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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컵·물비누 안 쓰니 ‘환경호르몬’ 5분의 1로 줄어”

sukji74 2017. 1. 15. 00:03



ㆍ생활환경 유해물질 노출 회피…시민·기자 7명 ‘4박5일 체험’


 

‘내분비계 교란물질 에틸파라벤 204분의 1로 급감’ ‘영수증에 묻어 있는 비스페놀A 5분의 1로 줄어듦’ ‘생식기능에 부정적 영향 미치는 프탈레이트는 불검출’….

지난달 경향신문과 서울대·을지대·한양대 연구진의 ‘생활환경 유해물질 노출 회피실험’에 참가한 이들이 받은 평가표다. 참가 전후 소변 내 내분비계 교란물질(환경호르몬) 농도가 변화한 수치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12일 아침부터 16일 아침까지 4박5일간 연구진이 요구한 생활원칙을 실천했다. 짧은 시간 생활화학제품이나 일회용품·즉석식품·영수증을 피하거나 줄이고 자주 씻거나 청소하면서 지냈지만, 몸에 일어난 변화는 의외로 컸다. 시민들도 저마다 “유해물질을 피해 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면서도 “나흘간 노력해 이만큼 유해물질을 줄였다면 앞으로도 노력해볼 마음이 생긴다”고 입을 모았다. 전문가들과 함께 시민들의 생활 속 체험을 통해 체내 유해물질 농도 변화를 측정·분석한 것은 국내 언론에서 처음이다.

실험 결과를 받아보기 전 피험자들이 가장 힘들었다고 꼽은 것은 ‘불편함’이었다. 생활을 편리하도록 돕는 생활화학제품이나 쓰고 버리면 되는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 등을 배제하고 사는 것에서 오는 수고로움이 낯선 탓이었다. 주부 이원실씨(50)는 “설거지할 때 주방세제 대신 밀가루를 썼지만 깨끗이 닦이는 느낌이 안 들었다”며 “유해화학물질이 든 제품들을 안 쓰려고 해봤지만 마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고 말했다. 실험에 참가한 경향신문 최미랑 기자(28)도 “세제를 안 쓰려니 밀린 설거지를 할 수가 없었다”며 “비닐·플라스틱 포장이 안돼 있는 식품을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고 전했다. 여성들은 화장품이나 목욕용품을 안 쓰거나 적게 써야 하는 데서 오는 불편을 더 호소했다. 이씨는 “폼클렌징, 보디클렌징 대신 고체비누를 쓰니 피부가 당겼고, 화장품 사용을 줄이니까 내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여성 참가자들은 샴푸를 안 쓰고 머리를 감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공공장소에서 생활화학제품이 무차별적으로 사용되거나 어쩔 수 없이 일회용기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과 불만도 토로했다. 권보경씨(32)는 “회사에서 뿌리는 방향제는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가 없었다”며 “공용화장실에 있는 손세정제는 성분 확인조차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이시은씨(28)는 “간편한 한 끼 식사로 햄버거를 자주 사먹는 대학생 입장에서 햄버거의 종이포장지가 열기와 닿으면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이 나온다는 연구진의 얘기는 충격적이었다”고 토로했다. 이원실씨는 “커피 주문할 때 머그컵에 달라는 말을 잊었는데 주문받는 사람도 당연하게 테이크아웃 컵에 주더라”며 일회용품이 범람하는 현실을 전했다.

 

그러나 4박5일간 생활수칙과 싸운 뒤 얻은 깨달음과 만족감은 컸다. 권보경씨는 “비스페놀A 농도가 높아 깜짝 놀랐다”며 일회용기 배달음식을 주범으로 꼽았다. 권씨는 “종이컵 안 쓰려고 텀블러를 들고 다녔는데 며칠 하다 실패했었다. 결과를 보니까 종이컵을 좀 더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나현철씨(31)는 “보디클렌저를 안 썼더니 오히려 몸이 덜 건조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공경원씨(55)는 “별로 큰 실천을 한 것 같지도 않은데 농도 변화가 커서 놀랐다”며 “실험 이후 유해물질이 많이 든 것 같은 물비누는 잘 안 쓰고 있다”고 말했다.

저마다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르게 생활한 덕분에 피험자들 소변에서 검출된 환경호르몬은 개인별로 수백분의 1, 수십분의 1까지 줄어든 사례도 있었다. 평균적으로도 모든 물질의 소변 내 농도가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프탈레이트류는 평균 25~89%가량, 비스페놀류는 평균 24~60%가량 줄어들었다. 파라벤 역시 33~91%가량, 트리클로산은 10% 정도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종합분석을 맡은 서울대 보건대학원 최경호 교수는 “식품용기 등에 쓰이는 고분자량 프탈레이트는 모든 참가자에게서 감소 추세를 보였고, 저분자량 프탈레이트도 대부분 참가자에게서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비스페놀A가 많이 줄어들고, 비스페놀S는 상대적으로 감소량이 적은 것을 보면 이번 실험에서 회피하도록 한 것 이외의 노출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한국인의 소변에서 특히 높게 검출되는 에틸파라벤은 단기간 노력으로도 노출 수준을 90% 이상 줄일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참가자들이 생활수칙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했고, 생활일지에 적은 것 이외의 유해물질 노출원도 있는 탓에 적은 양이지만 농도가 증가한 물질도 확인됐다. 최 교수는 “프탈레이트나 파라벤 일부가 증가한 참가자들은 이번 실험에서 피하도록 한 것들 외에 다른 고정적인 노출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런 부분의 보완을 위해 최 교수와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고영림 교수, 한양대 해양환경분석연구실 문효방 교수 등은 지난해부터 환경부 한국환경산업기술원과 함께 시민들의 환경호르몬 노출과 위해성 관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시민들이 일상에서 먹고, 마시고, 접촉하는 것들로 인한 유해물질 노출 정도를 정밀하게 살펴보기 위한 연구”라고 소개했다.

■ 최초 실험 진행 어떻게 - 먹고, 만지는 행동 기록아침 첫 소변 채취 분석

 

경향신문과 서울대·을지대·한양대 연구진의 ‘생활환경 유해물질 노출 회피실험’은 지난달 12일 아침부터 16일 아침까지 4박5일간 진행됐다. 20~50대 남녀 7명이 참가한 실험은 일상에서 시민들이 흔히 노출돼 있는 프탈레이트·비스페놀·파라벤·트리클로산 등의 유해물질을 측정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참가자들은 11일 저녁 연구진에게 분석 시료로 사용될 소변의 수집 방법과 생활수칙, 해당 물질들의 유해성 설명을 듣고 귀가했다.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위 사진)와 한양대 해양환경분석연구실 연구진이 지난달 유해물질 회피 실험에 참여한 시민들의 소변과 환경호르몬을 분석하고 있다. 을지대·한양대 제공

피험자들은 12일 아침 첫 소변을 채취·밀봉해 냉동 보관했고, 이후엔 연구진이 제시한 생활수칙대로 생활하면서 식사 때의 용기 종류, 영수증 수령 여부, 사용한 생활화학제품 종류 등에 관한 일지를 작성했다. 입에 들어가고, 손으로 만지고, 피부에 닿는 것은 모두 기록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피험자들은 실험 마지막 날인 16일 아침 채취한 첫 소변과 생활환경일지를 보내왔다. 냉동 상태로 밀봉된 피험자들의 소변은 각각 서울대 보건대학원, 을지대 보건환경안전학과, 한양대 해양환경분석연구에 퀵서비스로 보내졌고, 2주 동안 분석이 이뤄졌다. 을지대는 프탈레이트를, 한양대는 비스페놀·파라벤 등 분석을 맡았다. 두 대학 연구진이 확인한 유해물질의 농도와 피험자들의 일지를 토대로 서울대 연구진이 해당 물질들의 농도 변화와 실제 생활에서의 행동 간 관계를 분석했다.


< 출처 : 동아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