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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올해의 책 [국내서] 소설 시 과학 여성학 풍성했던 한해

sukji74 2017. 1. 14. 23:08



올해의 책 국내서  : 소설 시 과학 여성학 풍성했던 한해 

 

올해 교보문고의 도서판매 동향을 보면, 지난해에 견줘 소설은 18.4%, 시·에세이는 19.3% 신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출판계 불황이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란 불안감 속에 출발한 2016년, 5월 소설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으며 도서 시장은 활기를 되찾았다. 올해 출판계 이슈로는 한국문학의 르네상스, 강남역 살인사건 뒤 더욱 관심이 쏠린 페미니즘 도서의 선전, 과학책의 인기 등이 꼽힌다. 김재인·전대호 등 철학을 공부한 번역자들이 ‘공부 내공’을 실은 저서를 내놓아 눈길을 받았고, 인류학자 권헌익의 책이 번역돼 나온 것도 반가움을 더했다. 그밖에도 페미니즘 책을 두권이나 선보인 작가 이민경, 물리학자 김상욱을 비롯한 신진 저술가들의 책들이 적지 않았다. 한해를 정리하며 <한겨레>가 뽑은 ‘올해의 책’ 국내서 10권과 번역서 10권을 소개한다.


침몰하지 않을 ‘세월호 진실’의 실마리

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진실의힘·2만5000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후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시 7시간 행적에 대한 의혹이 다시 들끓고 있다. 국정농단 의혹을 밝혀낼 특별검사의 주요 수사대상이며, 국회 청문회에서도 304명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숨져간 그 순간에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추궁하고 있다. 청와대는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이것이 팩트입니다”라며 대통령이 당일 어떤 지시를 했는지 상세히 해명했지만, 이내 해경과 청와대 사이의 통화내용이 공개되면서 금방 거짓으로 드러났다.

‘진짜’ 팩트는 3월에 출간돼 1만부 넘게 팔린 <세월호, 그날의 기록>에 담겨 있다. 책은 15만장의 수사·재판기록과 3테라바이트에 이르는 영상·음성기록 등을 분석해 세월호 출항부터 침몰까지의 ‘팩트’를 담담히 정리했다. 400여쪽의 책을 읽다 보면 “이게 나라냐”는 말이 절로 나오게 된다. 특검에서 ‘대통령의 7시간’을 규명할 수 있을지라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는 건 아니다. 침몰되지 않을 진실의 실마리는 이 책에 담겼다.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를 한눈에

개혁과 개방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 1976~1982년 

파벌과 투쟁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2 1983~1987년

톈안먼 사건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3 1988~1992년

조영남 지음/민음사·각 권 2만2000~2만5000원

1976년부터 1992년까지,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개혁·개방을 다룬 역작이다. 조영남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3년 동안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 1200쪽이 넘는 대작을 낳았다. <덩샤오핑 시대의 중국 1·2·3>은 중국의 개혁·개방이 왜 시작됐는지, 어떤 암초를 만났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한눈에 살필 기회를 제공.

당시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는 전인미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덩샤오핑은 이 과정에서 공산당 지도부 전체의 균형을 잡으면서도 결정적인 국면에서 길을 새로 열어갔다. 책에는 1987년 후야오방의 퇴진, 1989년 천안문(텐안먼) 사건, 1992년 덩샤오핑의 남순 강화 등 중국 현대사의 명장면이 연이어 등장한다. 정치학적 분석과 역사학적 서사가 서로 잘 녹아들었으며, 중요한 1차 자료도 적지 않은 분량으로 실었다. 지은이는 <덩샤오핑 이후의 중국>(가제)도 두 권으로 집필하고 있다.


지금도 작동 중인 일제 때 검열기제

검열의 제국-문화의 통제와 재생산
정근식·한기형·이혜령·고노 겐스케·고영란 엮음/푸른역사·3만5000원

민족·인종·젠더 문제를 낳은 일제강점기 검열의 실체, 그 작동 메커니즘과 역사적 폐해를 다뤘다. 임화 등 민족해방을 추구한 사회주의자들의 좌절, 이광수·허영숙의 친일, 조연현의 노천명 폭행, 광복 뒤 이범석 족청계 제거 등의 사태에도 검열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검열이라는 국가 통제시스템이 만들어낸 사유 방식과 문화 구조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구도”를 그려보고자 한국·일본의 연구자 20명이 6개월에 한번씩 오가며 3년 이상 머리를 맞대 60편 가까운 보고서를 썼다. <검열의 제국>은 그 중 20여편의 글을 골라 실은 것이다.

 ‘검열 강박’ 때문에 나타난 “언술 내용의 도착과 이질성”은 종종 식민지 문화의 미성숙을 증명하는 표지나 피식민자의 지적 활동을 평가절하하는 근거로도 활용돼왔다. 검열 기제는,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소동이 보여주듯 미군 점령기를 거쳐 지금까지 형태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고생물학자가 탄 한반도 ‘타임머신’

10억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지질학자, 기록이 없는 시대의 한반도를 적다
최덕근 지음/ 휴머니스트·1만4000원 

 

한반도의 땅덩어리가 언제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밝힌 책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삼엽충 연구자인 지은이가 지질학의 전문지식이 없어도 자연사를 탐구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기술한 대중서이기도 하다. 북중국과 남중국으로 나뉜 중국 대륙에 실려 떠돌던 한반도의 두 땅덩어리가 대충돌을 일으켜 현재의 꼴을 이루는 과정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황해도 이북의 북한과 영남지방은 중국 북부를 포함한 땅덩어리의 일부였는데 중국 남부를 실은 땅덩어리와 충돌하면서 그 일부가 북한과 영남 사이에 끼어 현재의 경기·충청·호남을 이뤘다는 것이다. 또 5억년 전 태백은 지금의 서해처럼 얕은 바다였으며 오스트레일리아와 히말라야가 이웃이었다.

 

<10억년 전으로의 시간여행>은 과학자를 꿈꾸던 한 소년이 지질학자로 터 잡는 과정을 그리고 있기도 하다. 중생대 꽃가루를 전공하다 삼엽충을 연구하게 된 우연과 행운의 역정속 과학자의 삶을 .....


 

희로애락애오욕이 함께하는 술자리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창비·1만2000원

올해는 유난히 좋은 단편집이 많이 나왔다. 그중에서도 윤성희의 <베개를 베다>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은근한 가운데 얼얼한 감흥을 주는 작품들로 기억에 남는다. 일곱 단편이 묶인 <안녕 주정뱅이>의 등장인물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술을 사랑한다. 그들에게 술은, 사소하게는 일상의 시름을 덜어주는 벗이요, 거창하게는 전 존재를 걸 만한 추구와 몰입의 대상이다. 중증 알코올중독으로 요양원에 입원해 놓고도, 게다가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같은 요양원에 입원한 배우자가 있음에도, 주기적으로 밖으로 나가 지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와야 하는 ‘봄밤’의 영경은 극단적인 사례라 하겠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애인에게 버림받은 여자가 그 누나와 술을 마시면서 미처 몰랐던 실연의 비밀을 확인하는 ‘카메라’, 시이모와 조카며느리라는 어울리지 않는 파트너의 술자리를 그린 ‘이모’ 등에서도 술과 술자리는 인생사 희로애락애오욕을 풀어 내는 매개로 구실한다.


‘장정일 스승’ 박기영의 25년만의 시집

맹산식당 옻순비빔밥
박기영 지음/모악·8000원

<맹산식당 옻순비빔밥>은 ‘장정일의 스승’ 박기영이 1991년의 첫 시집 <숨은 사내> 이후 무려 25년 만에 낸 두번째 시집이다. 평안도 포수 출신인 부친이 대구에 냈던 옻 전문 식당과 그 집 메뉴를 책 제목으로 삼았다. 잡지에 먼저 발표하고 한권 분량이 되면 시집으로 묶는 관례와 달리 잡지에 발표하지 않은 신작시 50편을 곧바로 책으로 선보인 것도 이채롭지만, 수록작 대부분이 음식을 소재로 삼은데다 특유의 남성적 목소리와 북방 정서 등으로도 도드라져 보인다. “한 보름 길도 없는 산, 눈발 헤치며/ 짐승 쫓아 헤맬 때 주머니에 싸고 다녔다는 음식./ 소금과 청국장 손바닥으로 다져/ 숯불에 구웠던 세월”(‘청국장반대기’) 같은 대목에서는 잃어버린 시인 백석을 닮은 면모가 보이기도 한다. 방송작가와 프리랜서 연출가, 캐나다 이민과 귀국, 옻 관련 사업 등 한사코 문학에서 멀어지려 애쓰는 듯했던 박기영 시인의 귀환이 반갑다.


‘종북소동’ 부른 남북 냉전빙벽 넘는 법

빙하는 움직인다-비핵화와 통일외교의 현장  
송민순 지음 / 창비·3만원

노무현 정권 때의 외교부 수장 송민순 전 장관의 회고록. 발간 직후 여당 원내대표가 난데없는 ‘종북몰이’ 재료로 악용하는 바람에 더욱 화제가 된 책.

<빙하는 움직인다>는 “북한 핵 문제 해결의 종국적 방안”이라는 2005년의 9·19 공동성명이 어떻게 합의됐고, 왜 좌초했는지 그 자초지종과 의미 등을 정리·분석한다. ‘도끼만행 사건’에서 6·15 선언, 10·4 선언까지 각 시기의 주요 통일외교·안보 사건들, 각국 주요 등장인물들을 또 다른 맥락 속에서 되새길 수 있다.

 한반도에서 지배적 정치·경제·문화 권력을 행사하는 미국, 특히 군산복합체의 이해를 대변하는 그 나라 강경보수파들, 미국을 주적으로 설정하고 체제생존에 모든 걸 건 채 남북 모두를 궁지로 몰아가는 영리한 듯 어리석은 북, 그런 북에 중대한 전략적 이익이 걸린 중국, 미국을 추종하며 한반도에 개입하는 일본…. 주변국들과 그들의 철저한 자국 이익 추구가 빚어내는 거대한 장벽들을 다뤘다.  


성차별 회화 실전 대응 매뉴얼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입이 트이는 페미니즘 
이민경 지음 / 봄알람·1만2000원

지난 5월17일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은 깊은 절망과 분노를 낳았지만 “결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여성들의 자각 또한 불러 일으켰다.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를 지은 이민경(24)씨 또한 이런 마음에서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책은 ‘죽음 이후’의 새판 짜기를 결의한 여성 공동체의 선언문이며 영 페미니스트의 애도사”(김현미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라는 평을 받았다.

지은이가 9일 만에 쓴 이 책은 온라인서점에 입고되자마자 사회과학분야 베스트셀러에 진입했으며 두달 만에 1만권이 넘게 팔려 나갔다. 이 책이 나온 지 한달 뒤인 9월에 <우리에게도 계보가 있다>를 연이어 펴낸 이민경씨는 ‘올해의 발견’이라 해도 손색 없다.

원치 않는 대화는 끊어내고, 논쟁의 흐름을 바꾸고, 무례한 말에 통쾌한 ‘한 방’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마라”는 편견에 속이 답답할 때 볼 만한 회화책.


사전보다 큰 ‘속담 이야기’ 보따리

우리말 절대지식 -천만년을 버텨갈 우리 속담의 품격 398.911 김58ㅇ (사회실)
김승용 엮고 씀/동아시아·2만5000원

속담 사전이다. 한글의 닿소리 차례(ㄱ, ㄴ, ㄷ…)대로 3천여개의 속담을 나열하고, 뜻을 풀어썼다. 시작은 ‘가까운 무당보다 먼 데 무당이 용하다’ 항목이고, 마지막은 ‘흥정은 붙이고 싸움은 말리랬다’로 끝난다.

그러나, 그냥 사전은 아니다. <우리말 절대지식>에는 이야기가 있고, 도판을 곁들인 설명이 알차며, 비슷한 뜻의 ‘현대 속담’까지 수록해 내용이 풍부하다. 이를테면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에는 ‘머피의 법칙’이 짝을 이뤘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항목에선 ‘이유 없이 싫어하면 이유를 만들어주겠다’는 표현이 함께 실려 있다.

지은이는 혼자서 만 9년 동안 이 책을 준비했다고 한다. 전국을 돌며 속담 속에 배어든 삶의 지혜와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찾아낸 것이다. 지은이는 당부한다. “이 책은 사전식으로 구성했지만 사전이 아니다. 본래의 목적은 읽히는 데 있다. 읽어주기 바란다.”


한국문학이 놓친, 회사의 본질을 묻다

누운 배 
이혁진 지음 / 한겨레출판·1만3000원

당대 한국인의 삶에서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정작 회사를 정면으로 다룬 문학작품은 소략한 편이다.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이혁진의 소설 <누운 배>가 종요로운 것은 한국문학의 그런 공백을 메꿔 주기 때문이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 조선 회사를 배경 삼은 이 작품은 회사가 작동하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극히 사실적으로 보여줄 뿐만 아니라, 회사라는 조직의 냉혹하면서도 부조리한 논리 앞에 좌절하는 개인의 실존적 고투에도 공평하게 눈길을 준다. 소설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건조 중에 쓰러진 배를 놓고 벌어지는 조선소와 보험사 사이의 보험료 다툼이 전반부라면, 조직의 부조리와 비효율을 혁파하고자 새로 임명된 사장이 회사 내 기득권 세력을 상대로 벌이는 싸움의 성패가 후반부를 이룬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내부에서 무너져 내리고 스스로 부스러지고 짜부라지는 몰락”의 예감에 시달리던 주인공이 소설 말미에서 내리는 선택은 회사의 본질과 한계를 아프게 묻는다.


 < 출처 : 한겨레 >